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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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3,678회 작성일 20-11-0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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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계열  

부산외고



재수를 결심하게 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만족할 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평소 성적이 좋았는데 수능에서 갑자기 망쳐버린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후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나름대로 학교 내에서 상위권의 위치에 있었고, 나 스스로도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작년 수능에서 난 3년 내내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최악의 성적을 받게 되었다. 솔직히 나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심리적인 공황은 엄청났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지 몰랐었다. 사람들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조울증의 증세까지 오기도 했다.


마음을 다시 추스르기 위해 난 한 사회복지기관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한 달간 여행을 떠났다. 일상에서 벗어나서, 잔잔한 생활을 하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내가 처한 현재 상황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그렇게 정리하고 난 뒤, 난 3월쯤에 재수 학원에 들어갔다. 재수를 시작하면서 나는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왜 재수하게 된 걸까?'


별 실없는 그런 말일수도 있지만 난 내가 왜 재수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상황을 잘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시간이 나면 생각했었다. 그러고 보니, 점점 나의 고등학교 생활의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먼저 난 너무 '나만의 독'에 빠져 있었다. 공부를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은 강했으나, 너무 힘과 의지만 앞서있어서, 실제적으로는 수능과는 상관없이 쓸데없는 공부를 많이 했고, 이로 인해 에너지도 많이 낭비했었다. 그리고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열심히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 그대로 '보여지기 위한 공부'를 많이 했다. 얼마나 많은 문제집을 풀었고,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책상에 앉아 있었고, 얼마나 애쓰는지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학생들도 잠시나마 이런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3월이 되면 EBS 수능특강을 풀고, 그게 끝날 때쯤 고난도 문제집 풀고, 여름방학 쯤 되면 낱개로 된 인터넷수능문제집을 풀고, 그러다가 수능이 곧 다가오면 다 못 풀어서 버리고(?) 허겁지겁 수능을 치진 않는지 말이다. 수능시험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수학능력'을 시험하는 문제이다. 즉, 문제가 요구하는 사고과정을 얼마나 능숙하고 간단하게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기계처럼 시기별로 문제집을 풀어 넘긴다고 성적이 느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문제집을 풀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진도에 매달려서 문제집에 내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 문제를 풀면서도 나의 사고과정이 얼마나 수능이 요구하는 그것과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난 '고3때도 그렇게 해서 망했는데 재수하면서는 제발 그러지는 말자'고 결심하면서 철저히 하나하나 이해하고 넘어가는 방식으로 공부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보여지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진짜 필요한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다. 매일 총 3시간정도 야자 시간 중에 난 2시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여 그날 수업했던 책들을 복습하였다. 단순히 선생님의 필기만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설명하려고 하는 논리과정을 따라가면서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잘 이해가 안되거나 어려웠다면, 스스로 마인드맵 비슷한 것도 만들어서 그려가며 이해하기도 하였다. 남은 1시간 정도는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분야의 문제를 풀면서 보충하였다.


'예습하고 복습하라'는 말이 모든 공부 방법의 정석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명제이지만, 실제로 이것을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다. 나도 처음에는 이러한 복습하는 습관을 몸에 들이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 스스로 학습의 개념이 단단해진다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꾸준히 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재수하는 내내 만족스럽고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흔히 겪는 것처럼 6월 모의평가를 치고 날씨가 점점 더워지면서 학원을 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학원에 있을 바에야 혼자 공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 ' 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 학원을 끊고 싶은데...' 이런 류의 생각 말이다. 나도 그런 생각에 8월이 시작됨과 동시에 학원을 그만 뒀었다.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던 처음에는 이 방대한 자습시간들이 행복하게 느껴졌었다. 열심히 공부하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방대한 자습시간이 인터넷 강의 몇 개 듣다보면 얼마 안남아 있는 것을 느끼게 되고, 친구랑 잠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보면, 하루 공부는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생겼다. 어느 순간 나의 섣부른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학원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분명 학원이라는 체제는 학교를 대신해서 학생들을 체제 속에 잡아줌으로써 학생들이 적절하게 시간 운용 및 생활 리듬을 되찾아 주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나는 지옥의 한달(?)을 독서실에서 혼자 보내고 난 후 오랜 숙고 끝에 체계적인 컬리큘럼과 매주 실시하는 고난도 문제 중심인 핵심체크 테스트로 개념원리와 논리적인 사고전개를 집중적으로 훈련시킨다는 인근 부산종로학원으로 학원을 옮겨 등록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머뭇거리지 않고 재빨리 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학원으로 돌아온 것이 참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학원에 돌아와 나는 논리적 사고전개과정을 집중적으로 훈련하여 9월 평가에서 마침내 만족할만한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논리적 사고 훈련은 수능 시험에도 그대로 적중되어 -9점의 고득점을 얻을 수 있었다.


공부 PLAN으로 본다면 난 3월에서 6월까지는 학원진도에 맞추어 개념을 정리하였고, 6월 평가를 치고 난 뒤부터는 수능기출문제집을 사서 천천히 풀기 시작하였다. 9월 이후부터는 평가원문제 분석이나, 사탐 개념 마무리 정리를 하였고, 10월 이후에는 오답노트를 이용했었다.


재수시절 어떤 선생님께서 이런 속담을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너무 조급하게 마음 먹지 않고 정말 정신 차리고 한발 한발씩만 나간다면 위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결과와 함께 먼 훗날 나의 재수 시절을 하나의 '아름다웠던 좋은 시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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